뉴질랜드 소도시 살이: 카페 일자리 구하기

뉴질랜드 소도시는 대부분의 카페들이 오전 6-7시에 문을 열고 늦어도 오후 3-4시에는 마감을 한다. 새벽 6시에 출근을 할 땐 설마 이 시간에 손님이 오겠나 싶었지만 정말 그 시간에도 키위들은 매장에 앉아 커피와 아침을 먹는다. 카페에서 일을 하게 된다면 출근이 이른 만큼 퇴근도 빠르기 때문에 하루를 길게 쓰며 말 그대로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 CV drop

뉴질랜드, 특히나 소도시에서 카페나 식당 일자리를 구하려면 직접 돌아다니며 CV를 뿌리는 게 가장 빠르다. 한인 커뮤니티 내의 일자리를 제외하면 캐셔나 서버 직종의 공고는 온라인에 잘 올라오지도 않고 어디에 일자리가 있을지 미리 알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도 그랬고 주변의 경우에도 하루 날을 잡고 구역을 정해 걸어 다니며 눈에 보이는 가게마다 차례로 들어가 CV를 주고 나온 것이 가장 쉽고 빠르게 괜찮은 일자리를 구한 방법이었다. 초반에는 남의 업장에 들어가 다짜고짜 일자리가 있는지 묻는 느낌이라 매우 어색하고 용기도 필요했지만 이 나라에서는 이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인식하고 몇 번 반복하다 보니 활기찬 인상을 줄 수 있었다.

사장이나 최소 매니저급의 담당자를 만나 직접 인사하고 CV를 줄 수 있으면 가장 좋지만 그냥 직원에게 주더라도 웬만하면 전달은 된다. 피크타임에 찾아가 바빠죽겠는 사람을 붙드는 짓만 안 하면 된다. 이렇게 CV drop을 했을 때 현재는 자리가 없지만 기회가 생기면 연락 주겠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앞으로의 구인 계획도 전혀 없는 곳 같으면 CV 한 장이라도 아끼라고 다시 돌려주는 경우도 있었다. 개중에 그 자리에서 CV를 읽어보고 바로 트라이얼 일정을 잡은 곳도 있고 며칠 뒤 연락이 와서 트라이얼을 오라고 한 곳도 있다. 몇 달이 지나 기억에서 잊혀 갈 때쯤 정말로 자리가 생겼다고 연락이 온 곳도 있었다.

이 외에도 종종 지인을 통해 어디서 구인 중이라는 정보를 듣거나 일하던 가게에 손님으로 온 분에게 스카웃 제의를 받은 적도 있다. 심지어 내가 같이 일했던 동료 중 한 명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장에게 힘 잘 쓰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고 채용이 된 경우이기도 했다.

📋 Trial

트라이얼은 몇 시간 정도 실제로 일을 해보며 평가받는 면접의 연장선이다. 트라이얼까지 했다면 웬만한 태도불량이 아닌 이상 합격으로 이어진다. 트라이얼 후 출근을 하지 않는다면 본인이 먼저 거절한 경우가 더 많다. 트라이얼은 보통 무보수로 진행되지만 그날의 점심 식사 정도는 제공을 해준다.

트라이얼 데이에 실질적으로 일을 하기를 기대하지는 않기 때문에 메모할 부분들은 받아 적으며 알려주는 것들을 열심히 배우다가 직접 한 번 해볼래? 했을 때 못하더라도 적극적으로 해보려는 태도를 보이면 된다. 나는 평소 차가워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라 의식적으로 손님들에게 스몰 토크도 많이 하고 최대한 밝은 인상을 주려 노력했다.

트라이얼이 끝난 뒤 마음에 들었다면 보통 그 자리에서 바로 언제부터 출근하라고 말해준다. 그러면 나는 캐비닛에 진열된 푸드와 식사 메뉴판, 포스기 화면 같은 것들을 찍어가 정식 출근 전까지 어느 정도 숙지를 해왔다. 대부분은 포스기에 가격이 이미 설정되어 있지만 간혹 메뉴별 가격을 외워 직접 입력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 실제 근무

뉴질랜드는 어느 카페를 가나 비슷한 메뉴에 비슷한 시스템이다. 캐셔 포지션으로 일하게 된다면 어느 정도의 올라운더 역할을 해야 한다. 주 업무는 주문과 결제 받기, 캐비닛 푸드 세팅과 서빙, 간단한 티와 음료 제조 정도이고 바리스타라면 여기에 추가로 커피까지 만든다. 별도의 식사 메뉴가 있는 브런치 카페라면 주문을 주방에 넘기고 음식이 나왔을 때 서빙만 하면 된다. 그 외에 잡다한 일들과 청소 등을 한다.

내가 소규모의 베이커리 카페에서 풀타임으로 일했을 땐 주방 보조 일까지도 같이 했다. 나는 계란 프라이도 다 태워먹을 정도로 요리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이곳에서 모든 재료의 손질을 맡아서 하고 손님의 아침 식사도 직접 만들었다. 조금 익숙해지고는 파이와 샌드위치 만드는 것을 배웠고 더 지나선 케이크도 만들었으며 나중엔 하다 하다 바리스타가 아닌데 커피까지 만들었다. 여기에 부자재 재고 파악과 발주까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다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커피에 대해 말하자면 키위들은 커피의 맛에 매우 민감하며 그만큼 커스터마이징이 일상적이다. 우유와 설탕의 종류만 해도 여러 개이고 그 외의 요구 사항도 다양해서 옵션 없이 주문하는 경우가 드물다. Large flat white with trim milk, half strength, 2 equal, extra hot 등등 하나의 주문에도 이런 식으로 옵션이 붙는데 대부분이 단골 손님이다 보니 각 손님의 커피를 사이즈와 옵션까지 외워야 했다. 초반에는 손님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기도 벅찬데 커피와 옵션까지는 그렇다 쳐도 사이즈까지 외우는 것이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이런 것들은 일주일 정도만 지나도 금방 익숙해진다.

손님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일도 꽤나 중요하다. 단골손님이 단골손님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손님 한 명 한 명을 기억하고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것까지가 업무의 한 부분이었다. 물론 아름다운 관계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계산을 안 하고 도망가는 손님, 매일같이 할인을 요구하는 손님, 아시안이라고 표정부터 썩는 손님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동네 밖에서 마주쳐도 반갑게 인사하고 서로의 일상을 나누는 사이가 될 정도로 관계를 쌓아가는 것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적당히 발전된 소도시에서 무난한 난이도의 카페 알바는 해외살이 초기 생활력과 영어 실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별다른 기술 없이는 시즈널 잡(키위 농장, 홍합 공장 등)이나 캐셔 일 정도가 최선일 정도로 일자리가 한정적이긴 했지만 그만큼 큰 걱정 근심도 없이 매일이 에메랄드 빛인 자연 속에서 잠깐 쉬어가는 시간을 살았다. 하루하루가 특별할 건 없었지만 낯선 땅에서 그런 일상들이 쌓여가는 건 또 다른 의미였다고 기억한다.

📝뉴질랜드 소도시 살이: 플랫 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