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지상직 #10: 레이오프가 시작되고 떠나가는 동료들

하루하루 진이 빠지게 일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 복에 겨운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항의 모든 항공편이 뚝뚝 감소했다. 매일매일 만석이었던 비행이 일주일에 다섯 번으로, 세 번으로, 나중에는 한두 번으로 줄었다.

밴쿠버 공항에서만 10년 이상 일한 선배들도 메르스 이후로 처음 겪는 사태라고 했다. 회사에서는 LOA 신청을 받기 시작했고 자진해서 떠나는 선배들이 하나 둘씩 생겼다. 시니어리티 끄트머리에 있는 에이전트들은 단체로 레이오프를 당했다. 이는 비단 우리 회사 뿐만이 아니었다.

처음 회사에 조이닝 할 때 같은 입사 동기끼리도 순서를 정해야 해서 뽑기를 했다고 한 적이 있는데 이 때 뽑기 운이 좋았던 나는 레이오프 시기에 정말 간발의 차이로 살아남아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다.

초반엔 불만을 가지는 친구들도 있었고 억울해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다 우리가 정말 믿고 따르던 이 회사에 몇십 년을 바친 매니저들까지 레이오프를 당했을 땐 다같이 눈물 바다가 되었다. 사람들이 점점 잘려나갔고 결국 시니어리티가 애매한 에이전트들과 헤드급 매니저들만 남은 구조가 되었다.

인력이 모자라다 보니 살아남은 에이전트들은 갈려나가듯 일했다. 모든 나라에서 전세기를 띄우기 시작했고 그 모든 체크인도 우리가 담당했다. 원래 밴쿠버에 취항하지 않는 항공사들까지 죄다 들어왔고 규정도 시스템도 모른 채 거의 수기에 가까운 체크인이 진행되었다. 당연히 서비스 따위는 신경 쓸 여력도 없었다. 물론 그들도 본국으로 돌아가기 바빴기에 서비스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앞서 말했듯 나는 blue RAIC 소지자라 골프카 운전이 허용되지 않았는데 인력이 너무 모자라다 보니 운전 면허만 있으면 그냥 골프카를 운전하라는 압박도 받았다. 사실 일만 생각하면 하는 게 맞았고 나도 그에 동의할 생각이었지만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선배들만이 나를 말렸다. 거부할 수 있는 것도 너의 권리라며 공항 근무자로서 괜히 안 좋은 기록을 남겼다가 추후 내 인생에서 혹시 모를 불이익을 만들지 말라고 조언해주었다.

하루하루 마음이 좋지 않았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힘들게 한 명을 떠나보내면 또 며칠 뒤 한 명이 떠나가는 마음 아픈 날들의 연속이었다. 나의 시프트도 사실상 반토막이 나있었고 내가 여기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11 퇴사 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