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1년 간의 생활을 끝내고 곧바로 캐나다로 왔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지만 영어 실력도 어느 정도 늘었다고 생각했고 해외에서 살아남으려면 조금 더 적극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시점이었다. 뉴질랜드 워홀 초반에 일을 너무 일찍 시작해서 여유가 없었던 것을 생각하며 천천히 적응할 시간을 가지고 일을 구했다.
📋 다시 백수
초반 한 달은 이상한 회사에서 오피스 잡을 했다. 사실 회사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뭣한 어떠한 집단에 가까웠다. 구구절절 말하자면 길지만 나는 이 때의 경험을 통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는 버틸게 아니라 과감히 그만둘 줄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버텨내고 나면 성장이 기다리는 일과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다르다.
어쨌든 한 달 만에 다시 백수가 된 나는 다시 구직 활동을 시작했다. 오피스 잡까지는 아니더라도 캐셔나 서버 직종을 제외한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는데 1년짜리 워홀 비자의 나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잡 페어도 가보았는데 해외 현지 박람회는 어떨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온 내가 절실하게 준비해온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띌 리가 없었다.
나는 현지인들 사이에서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경쟁력이 무엇일까를 고민해보았고 생각보다 답은 간단했다. 한국어를 할 줄 알다는 것. 한인 잡을 제외하고 코리안 스피커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경쟁력이 될 수 있을 만한 일들을 찾아보았고 밴쿠버 국제공항의 지상조업사에 지원하여 인터뷰 인비테이션을 받았다.
📋 Interview day
뭔가 설레는 긴장감이 있으면서도 내가 무슨 수로 영어 그룹 면접을 이겨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들고 온 몇 안되는 옷들을 뒤져서 최대한 깔끔하면서도 조금은 튀게 입었다. 공항은 늘 비행기를 타러만 갔지 항공사나 조업사 사무실들이 어디쯤에 위치했을지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텍스트로만 받은 면접 장소를 찾는 것이 어려워 공항 직원 같아 보이는 사람들을 아무나 붙잡고 물어물어 면접 장소에 도착했다.
먼저 와서 대기 중인 면접자가 한 명 있었고 조금 지나자 몇 명이 더 도착했다. 우리는 이런저런 소소한 대화들로 긴장을 풀면서 대기했다. 시간이 되자 면접관이 들어와서 옆 회의실로 안내했다. 면접관은 두 명, 면접자는 총 대여섯명 정도였다. 타원형 테이블에 다같이 둘러 앉아서 한 명씩 자기소개부터 시작했고 각자 이력서를 바탕으로 질문 한두 개씩을 받았다. 한 바퀴가 돌고 난 후에는 랜덤으로 추가 질문이 이어졌다. 이 때는 인상에 남는 사람 위주로 질문이 돌아가는 듯 했다.
나는 처음부터 많이 떨기도 하고 버벅거렸다. 몇 개 받은 추가 질문에 어떻게든 끝까지 대답은 했지만 면접장을 나오는 순간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내 대답은 형편없었고 영어도 엉망이었을 게 분명했다. 현지에서 이런 그룹 면접 기회를 가져본 것 만으로 좋은 경험이었다고 체념했으며 다른 지원자들의 대답을 통해 배운 것들이 있어 좋았다고 생각했다. 아래 대답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Q. 체크인 에이전트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A. 안전이다. 승객들의 안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안전도.
면접이 끝나고 다른 면접자들과 이런저런 수다를 떨면서 나왔다. 대화를 나눠보니 대부분이 캐내디언이거나 최소 영주권자였다. 가뜩이나 비자로 지적을 받은 내가 합격할 가능성이란 더더욱 없어 보였다. 그래도 이 날은 밴쿠버 특유의 상쾌한 가을 공기와 스카이트레인을 타고 돌아가는 길 밖의 화창한 풍경 덕에 그냥 기분이 좋았다.
📋 I got hired!
그러고 며칠 지나지 않아 2차 인터뷰에 와줄 수 있냐는 전화를 받았다. 일시를 잡고 이것저것 지참해야 할 서류들의 목록을 받아 적었다. 기쁨도 잠시, 생각지도 못했던 2차 인터뷰라는 말에 산 넘어 산인 기분이었지만 주위에서 서류를 지참해오라는 인터뷰이면 사실상 합격 수순일 것이라고들 했다.
당일에 가보니 그 말대로 2차 인터뷰는 단순히 회사 조이닝을 위한 페이퍼 워크 미팅이었다. 아무래도 공항에서 일하는 것이다 보니 시큐리티 관련으로 해야 할 일들이 정말 많았고 이래저래 절차가 복잡했다.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린 미팅을 마치고 트레이닝 일정 안내를 받았다. 약 일주일 간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빡빡하게 이어지는 스케줄이었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마냥 기쁘고 감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