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지상직 #11: 퇴사 결심

이때쯤 내가 소속되어 있던 항공사는 우리 회사와 계약을 마무리하고 다른 지상조업사로 파트너십을 변경할 예정이라고 했다. 회사에는 티 나지 않게 항공사 측에서 같이 따라갈 의사가 있냐는 제안이 왔다. 이런 고민들을 항상 털어놓던 선배들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시니어리티가 높은 선배들에게는 그런 접촉이 전혀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같은 제안을 받은 몇몇이서만 조용히 모여 고민을 했다.

시니어리티가 낮은 나를 제외하고는 다들 2개 이상의 항공사 풀에 속해있다 보니 타 항공사들에 대해 듣는 말들도 많았는데 우리 항공사만큼 에이전트들을 잘 대해주는 곳은 없었다. 서로를 존중하며 일했고 다들 개인적인 관계도 돈독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시급도 조금은 올라서 고민을 해볼 만은 했지만 사실 나는 비자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비자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밴쿠버 전체에 lock down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았고 생존에 필수적인 마트와 약국만이 영업을 할 수 있었다. 여기 온 후로 일만 하느라 즐기지도 못했던 자연 경관이라도 보러 다니려 했더니 모든 국립 공원도 폐쇄가 되었다. 말 그대로 집에만 갇혀 있어야 했다.

밴쿠버에서 알고 지내던 한국인 지인들도 전부 한국으로 돌아갔다. 비행 편이 모두 박살난 상태라 항공권 예매 자체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 빠르게 결정해야 했다. 얼마 없는 직항은 이코노미가 비즈니스를 상회할 정도로 가격이 치솟았고 경유를 하기 위해서는 나날이 바뀌는 국가마다의 경유 가능 조건을 확인해야 했다.

놀 것도 할 것도 없었고 줄어가는 시프트에 월세를 내는 것도 빠듯해지고 있었다. 주변 지인의 지인이 코로나에 걸려 사망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사실 생활하는 거야 어떻게든 버텨볼 수 있었지만 내가 정말로 코로나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과연 이 나라에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까 싶었다. 만에 하나 죽어도 한국에서 죽어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워홀이 끝나고 한 번에 캐나다 동부와 미국 여행까지 이어서 하려고 여행 한 번 안 가고 돈을 모았고 ESTA 비자까지 받아놓은 상태였는데 미국 땅 한 번 밟아보지 못한 채 돌아가야 한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앞으로 계획하고 있었던 일들도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 팬데믹은 몇 달 내에 끝날 일이 아니라는 현실을 직시했을 때 회사에 얼른 노티스를 주고 그 기간 동안 은행 계좌와 집부터 정리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