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장의 트렌이탈리아 이딸로 이용기 (ft. 돈 조금이라도 아끼는 법)

오기 전부터 예상은 했습니다. 유럽의 모든 저가 항공들도 마찬가지고 특히 이탈리아 기차 연착은 일상이라는 말을 익히 들어 도시 이동을 하는 날에는 모든 일정을 여유롭게 잡긴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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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을 많이 했던 위즈 에어가 생각보다 너무 괜찮아서 만족한 상태로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도착 후 2시간이 넘도록 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이 워낙 번잡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결국 한참 동안 짐을 기다리다 예매해두었던 기차를 놓쳤습니다.

일단 짐 분실이 아닌 것 만으로 다행이다 위안을 삼으며 어떻게든 빌어보자는 생각으로 트렌이탈리아를 타러 갔습니다. 예약할 당시 제일 저렴한 티켓을 샀었는데 non-refundable이라 무조건 티켓을 다시 사라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비행기 지연 때문인데 어떻게 안될까 빌었더니 안에 들어가서 열차 담당 매니저한테 물어보라고 합니다. 베레모를 쓴 분한테 사정을 설명해보았더니 잠깐 고민하더니 그냥 타라고 합니다.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서 테르미니 역까지는 지정석이 아닌 자유석 열차여서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테르미니 역에서 환승해야 했던 다음 기차는 지정석이었고 티켓을 새로 사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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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피렌체에서 로마로 가는 날이었습니다. 역 카페에서 아침 식사랑 같이 커피를 시켰는데 식사가 끝나가도록 커피가 안나옵니다. 사실 밥보다도 커피가 미친듯이 먹고 싶어서 계속 기다렸습니다. 두 잔 밖에 안 나오길래 우리 커피 나올 거 더 있다고 하니 그제서야 여유롭게 만들어 줍니다.

그냥 나머지 커피는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몇 시간씩 지연도 기본인데 3분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멍청한 생각으로 마침내 커피를 받아들고 달렸습니다. 플랫폼에 도착하자마자 부우우우우웅 하고 바로 눈 앞에서 떠나가는 기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정말 아무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먼저 타있던 언니가 기차 밖으로 머리를 빼고 계속 기다렸는데 맴, 이제 우리 진짜 가야 해라며 머리를 집어넣으라고 했다고 합니다. 인생은 참 왜 이럴 때만 정시 출발일까요..? 정말 간발의 차로 이산가족이 되었습니다.

피렌체에 남겨진 아빠와 저는 잘됐다 앉아서 커피나 천천히 먹고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자는 생각으로 다시 카페로 돌아왔습니다. 커피를 다 먹고 이딸로 창구를 찾아가 이번에도 열심히 빌어보았습니다. 우리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산가족이 되었다, 이 티켓에서 두 명만 못 탄 건데 제발 다음 시간 기차로 수수료 없이 바꿔줄 수 있겠니? 하니 요금 차액만 내면 변경 수수료는 면제해주겠다고 합니다. 사랑합니다 이딸로.!! 어쨌든 역대급 멍청비용이었습니다.

3/

가장 큰 문제는 밀라노에서 벨라노로 이동하는 날이었습니다. 렌터카 반납도 여유롭게 하고 일찌감치 역에 도착했는데요. 오는 길에 계속 비가 왔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해서 전광판을 보니 벨라노 쪽으로 가는 기차가 전부 캔슬이라고 뜹니다. 그 쪽 기차 선로 일부가 물에 잠겨서 복원 작업 중이라고 합니다.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며 복원 작업이 완료되면 티켓 변경 수수료 없이 그냥 다음 열차를 타면 된다고 했습니다.

이 때 시간이 오후 5시쯤이었고 이 날의 마지막 기차가 오후 7시여서 똥줄이 탔습니다. 만약 그 때까지 복원이 안되면 제일 돈 많이 들인 벨라노 숙소를 날림과 동시에 밀라노에서 노숙을 해야 할 수도 있었는데 정말 다행히도 마지막 기차를 탈 수 있었습니다.

각 도시에서 이런 일들을 겪으며 느낀 거지만 트렌이탈리아도 이딸로도 역마다 인포메이션 데스크가 딱 한두 개 정도 밖에 없는데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어서 간단한 질문 하나를 하려고 해도 최소 20분씩은 기다려야 합니다. 티켓 창구는 더 오래 걸립니다. 그럴 땐 검표원이나 돌아다니는 다른 직원들에게 대략적인 상황 설명을 하고 어느 정도 가능성 있는 대답을 듣고 나서 줄을 기다리는 게 좋습니다.

확실히 창구마다 직원 재량도 있어 보이고 하니 지연이나 연착 등으로 티켓을 다시 사야 할 경우가 생긴다면 이렇게 부탁이라도 해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저는 제 잘못으로 기차를 놓치기도 했지만 같은 시기에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있던 지인은 8시간 연착도 겪었다고 하니 이동하는 날 일정은 항상 여유롭게 짜는 것을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