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ggage
그럼에도 내가 마지막까지 해보지 못해 아쉬운 포지션이 딱 하나 있다. 누구도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사실 내가 가장 원했던 업무는 수하물 핸들링이다. 이유는 단순하게도 그 업무가 제일 멋있어 보여서였다.
어느 정도 힘 쓸 일이 있어서 그런지 여자 에이전트는 잘 안 보내기도 하고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워서 다들 꺼려하는 포지션이었다. 안 해봐서 이런 말을 나불대는 것일 수도 있지만 불편한 유니폼 대신 정비공처럼 바디수트를 입는 것도 멋있어 보였고 공항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 대한 이해도도 좀 더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를 경험해보지 못해서 아직까지도 아쉽다.
📋 Blue RAIC
이 포지션을 할 수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내 비자였다. 공항에서 일하려면 RAIC(공항제한구역 출입증)이 발급되어야 하는데 다른 동기들은 입사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full access를 가진 red RAIC이 나온 반면 나는 퇴사할 때까지 많은 제약이 있는 blue RAIC을 가지고 일했다.
캐나다는 비자 발급만 해도 범죄기록회보서를 비롯한 여러가지 서류들이 요구되는데 보안이 중요한 구역을 드나드는 업무 특성상 입사 과정에서는 근 10년 간의 내 모든 과거 기록을 낱낱이 제출해야 할 정도였다. 자국민이 아닌 그것도 워킹홀리데이 비자에게는 당연히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Search Required’가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는 blue RAIC은 게이트로 넘어갈 때마다 매번 자켓을 벗고 소지품을 검사하는 검색대를 거쳐야 했고 탑승 게이트 문은 물론이고 항공사 오피스들이 있는 층으로 들어가는 출입문도 열지 못했다. 공항 내 직원 전용 엘리베이터도 탈 수 없었고 카고 층에는 아예 출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골프카 운전도 금지되었다.
이러다 보니 나는 일찍 출근을 해도 오피스 층 앞에서 누군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브리핑을 하러 들어갈 수 있었고 도착 편 시프트에 휠체어 손님을 케어할 때는 공항 직원을 아무나 붙잡고 엘리베이터 좀 잡아달라고 부탁을 해야 했다. 내가 편하기 위해서는 red RAIC이 있는 동료들한테 열심히 붙어 다녀야 했지만 귀찮기는 해도 크게 힘이 들지는 않았다. 다만 입사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도록 red RAIC이 나오지 않으면 해고된다는 말이 있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