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에서 느끼는 대한민국인
수습 기간이 끝나갈 무렵 있었던 일이다. 나와 전체 트레이닝부터 같이 했고 같은 항공사에 배정되었던 입사 동기 한 명이 해고되었다. 업무 태도도 좋지 않고 위반 사고도 치고 몇몇 이유가 있다고 들었다. 칼 같은 해고에 놀라기도 했지만 사실 그 친구에겐 디폴트인 북미 문화권에 모국어가 영어라는 조건이 나에게 주어졌다면 정말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어찌 되었든 비자가 일시적이고 영어가 부족하더라도 좋은 태도를 유지하고 업무를 잘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한 사건이었다.
아시안은 똑똑하다, 수학을 잘 한다와 같은 말들이 이제는 인종 차별적인 뉘앙스로 인정될 정도이지 않나. 역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평균적인 능력치가 뛰어난 것도 사실이겠거니 한다. 특히 한국인은 외국인들이 볼 때도 확실히 일 잘한다는 이미지가 있다. 어릴 때부터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왔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만 해외에 있어보면 개개인의 언어적 한계를 제외하고는 일하는 속도, 눈치, 태도, 멀티플레이 등 다방면에서 한국인들이 일머리 하나는 월등하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다. 다 떠나서 우리나라에서 다들 하는 기본 중에 기본만 해도 여기에서는 엄청나게 성실한 편에 속한다.
📋 북미의 Gen Z
이 나라의 젠지들은 5시 퇴근이면 5시 땡 하자마자 말 그대로 손에 잡고 있던 일도 그대로 내려놓고 퇴근을 한다. 사실 이 정도는 뉴질랜드 시절부터 많이 봐와서 익숙했다만 여기서는 그 날 하기 싫은 듀티를 배정받았다거나 업무 특성상 갖춰야 하는 기본적인 모습(full 유니폼 착용, tied up 헤어 등)을 지적하는 게 싫다고 매니저와 언쟁을 하는 애들도 있었다.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업무 태도가 심각하고 거기에 일까지 못한다면 해고가 될 수도 있겠지만 (북미권의 해고는 우리나라와 달리 정말 살벌하다.) 다들 어느 정도 연차도 있고 대체할 사람을 찾기도 귀찮아 그런지 크게 문제 삼지는 않는 듯했다. 각자의 개성이 넘치고 재밌는 모습도 있는 친구들이었지만 상급자는 상급자이고 본인을 위해서라도 굳이 불필요한 적대적 관계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쌓여 언젠가 불이익으로 돌아오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전형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좋게 평가 받는 행동들이 긍정적인 반응 만을 불러오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여기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된 지인이 일을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종종 야근을 했는데 그게 반복되자 동료들이 우리의 문화를 망치지 말아달라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이제는 한국에서의 인식도 많이 바뀌고 있는 것처럼 맡은 일을 실수 없이 제 시간 안에 끝내는 것도 능력인 시대다. 물론 이 나라 사람들도 절대적인 업무량이 많으면 야근도 하고 급할 땐 휴가 중에도 일을 한다.
📋 할 말은 할 줄 알아야
또한 기본적으로 자기 할 일은 충분히 해내고 있다는 전제 하에 할 말은 당당하게 할 줄도 알아야 한다. 꾹 참고 가만히 있는다고 절대 누군가가 먼저 알아주지 않기 때문에 본인이 처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모든 게 시니어리티 순인 이 회사에서 한동안 밤낮없이 불려나가던 때가 있었는데 매일 같이 근무 몇 시간 전 콜씩을 하는 동료들 때문에 몇 안되는 인원으로 엄청난 양의 일을 쳐내야만 했었다. 이런 상황이 일주일 넘게 반복되자 정직하게 시프트를 받는 사람만 호구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최악의 경우 짤릴 것까지 각오하고서 헤드 매니저를 대면해 더 이상 정규 시프트 외에 나가고 싶지 않다는 강력한 컴플레인을 했다. 그랬더니 그동안 많이 도와준 것을 잘 알겠고 고맙게 생각한다며 다음 정규 시프트까지 푹 쉬라는 너무도 쿨한 대답이 돌아왔다. 만약 그냥 참고 버텼다면 알아주는 이도 없이 내 몸만 아작이 났을 것이다.
📝#9 싸우다 보니 영어가 늘어간다 (ft. COVID-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