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공항으로부터 시내까지의 택시 요금은 정찰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2024 파리 올림픽을 기점으로 택시 단속이 강화되어 이를 어길 시 벌금을 세게 물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파리 공항에서 정찰제 택시를 타려면 개인적으로 호객 행위를 하는 기사들을 싸그리 무시하고 ‘TAXI’ 사인을 쭉 따라가면 됩니다. 택시 승강장에 도착하면 ‘Information’이라고 적힌 형광 조끼를 입은 직원 분이 안내를 도와줍니다. 오는 순서대로 인원 수와 짐의 양에 따라 택시를 매칭시켜주고 목적지를 말하면 가격도 다시 한 번 확인 시켜줍니다.
저의 경우 우선 택시를 타는 것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저희 가족은 총 5명이었고 각각 캐리어가 하나씩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밴을 타야 했는데요. 소형 밴은 4명이 최대라 탑승이 불가했으며 큰 밴이 올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샤를드골 공항으로부터 시내까지의 택시 요금은 아래 사진과 같이 센 강을 기준으로 위쪽은 56유로, 아래쪽은 65유로로 고정이 되어 있으며 이는 차량의 종류나 사이즈에 상관없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가격입니다.
다만 탑승 인원이 4인을 초과할 경우 5번째 사람에 대한 추가 요금 5.5유로를 지불하여야 합니다. 저희 가족이 지불해야 할 금액은 센 강 위쪽 56유로에 인원 초과 금액 5.5유로를 더해 총 61.5유로였으며 안내 직원에게 다시 한 번 금액 확인도 받았습니다.
참고로 저희 가족의 세 자매 중 첫째인 언니는 영국에 거주하며 유럽 대부분의 국가를 여행해본 경험이 있고 둘째인 저도 혼자서 세계 구석구석을 여행해 온 짬빠가 있기 때문에 사기 같은 것을 쉽게 당하지는 않습니다. 가끔 한국 돈으로 환산했을 때 몇 천원 정도의 바가지는 실랑이에 소비하는 에너지가 더 아깝기 때문에 그냥 주고 마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상대의 무례로 인한 개빡침 상태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단돈 천 원이라도 끝까지 싸워서 받아냅니다.
공항에서 택시 안내를 해줬던 직원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아까 그 직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한 남자가 와서 5인용 밴이 왔다며 탑승을 시켜주었습니다. 그것이 화근이었을까요. 목적지에 도착해서 짐을 내리고 나니 택시 기사가 94유로를 달라고 합니다. 왜냐고 물으니 대형 밴이기 때문이랍니다. 심지어 이 택시의 창문에는 공항에서 본 것과 동일한 정찰제 가격 안내문이 떡하니 붙어 있었습니다. 아마 호구들을 제대로 잡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기사는 개또라이에게 잘못 걸리고 말았습니다. 저희 언니가 사실 개또라이입니다.
시작은 차분했습니다. 공항에서 직원에게 안내 받은 금액과 그것을 찍어두었던 사진, 그리고 본인 차에 붙어 있는 가격을 다시 한 번 얘기하며 우리가 지불해야 할 금액과 다르다고 하자 그것은 소형 택시에만 적용되는 가격이며 본인의 차는 대형 밴이기 때문에 94유로를 내야 한답니다.
실랑이가 계속 되면서 뒤에 차들이 정체되자 차를 한쪽으로 세우고 본격적으로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불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을 파파고 음성 번역기를 돌려가며 싸웠습니다. 대형 변은 94유로라는 가격이 대체 어디에 적혀있냐며 니 창문에 붙어있는 가격표에서 보여달라고 하니 무작정 대형 밴은 가격이 다르다고 우깁니다. 불통 상태에서 한참을 싸웠고 저희가 죽어도 94유로를 낼 생각이 없어 보였는지 얼마를 지불하기 원하냐고 물어봅니다. 이렇게 타협을 유도하는 행위에서 이 인간이 사기를 치고 있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65유로(사실 56+5.5=61.5유로로 말했어야 하는데 흥분해서 잘못 말함)를 내겠다고 하자 길길이 날뜁니다.
해가 다 졌고 바람이 세게 불어 정말 추웠습니다. 도대체 공항의 누가 가격을 그렇게 얘기했냐며 트렁크를 열면서 짐을 다시 실으라고 다시 공항에 가자고 합니다. 연기와 액션이 아주 훌륭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체념을 했는지 70유로를 제안합니다. 그래 70유로를 내겠다만 너를 신고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조용히 차 번호판의 사진을 찍다가 걸렸습니다. 사진을 찍는 저를 발견하고는 흥분해서 달려와 조심하라며 너에게는 사진 찍을 권리가 없다고 소리를 칩니다. (이것도 번역기를 돌려서 알았습니다.) 이것이 정당한 가격이라면 왜 사진을 못 찍게 하냐, 찍어서 신고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타협한 70유로로 카드 결제를 하려고 하는데 계속 에러가 뜹니다. 몇 번을 시도해도 계속 에러가 뜹니다. 이제껏 유럽에서 몇 주간 아무런 문제없이 사용했던 카드였습니다. 혹시 매 시도마다 돈이 계속 빠져나가고 있는 건가 해서 실시간으로 은행 어플에 들어가 확인도 해보았으나 돈은 빠져나가지 않았습니다. 다른 카드로도 시도해보았으나 계속 실패입니다. 그러더니 현금 결제 유도를 합니다. 여기서 또 한 번 이 인간은 명백한 사기꾼이며 바가지 씌운 결제 기록을 남기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결제 오류는 끝이 없었고 칼바람 속에서 다같이 오들오들 떨며 거의 20분이 넘게 흘렀습니다. 갑자기 나는 너무 춥답니다. 응, 우리도 춥다고 했습니다. 아마 금액이 커서 그런 것 같다며 두 번에 나눠서 결제를 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이때서야 결제 단말기와 연결된 본인 폰의 셀룰러 데이터를 켜더군요. (이것이 사기와 상관이 있는지는 확실히 모릅니다.) 먼저 40유로를 결제하자 바로 승인이 뜹니다. 다음 30유로를 결제하려고 하자 갑자기 금액을 낮춰 25유로를 찍으며 헤헤 웃습니다. ???? 현금 결제 유도가 기어코 먹히지 않으니 결국에 저희가 주장한 금액인 65유로만 받으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 황당해서 그 자리에서 폭소가 나왔습니다.
네, 결국 65유로로 긴 싸움이 끝이 났습니다. 안타까움이 섞인 “굿나잇”을 해주자 저희에게 잘 먹고 잘 살라는 듯한 모욕의 제스처를 하며 떠났습니다. 각자의 언어로 쌍욕도 많이 오갔습니다. 나름 재밌었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런 택시 사기 행각이 정말 빈번하더군요. 특히 여자들끼리 혹은 아이와 같이 여행하는 분들의 경우 택시 기사가 소리를 지르며 위협적으로 나오니 그냥 바가지 금액을 지불하고 말았다는 후기도 많이 보았습니다.
사실 저희 언니는 이번 유럽 여행에서 바가지 씌우는 인간 한 명만 걸리라는 마음으로 드릉드릉 중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행 내내 모든 것이 순조로워 싸울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 아쉬웠는데 드디어 한 놈이 걸렸다며 갈증이 풀렸다고 좋아했습니다.
만약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 저희와 같은 상황을 겪는다면 사기인 것을 인지하고 번호판을 찍은 다음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는 것이 가장 빠를 것 같습니다. 이런 행각에 순순히 당해주고 넘어가지 않아야 선량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동일 수법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 봅니다. 저는 결론적으로 94유로를 지불하지는 않았으나 가지고 있는 증거를 종합하여 이 사건을 프랑스 경찰청에 신고도 할 생각입니다. 이상 파리 한복판에서 바가지 택시 시가와 20분 동안 싸운 후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