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공항의 지상 조업사에 합격 후 한 달여 간의 트레이닝을 마치고 체크인 카운터를 맡아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곧이어 게이트 리더 업무까지 맡게 되었다. 지상 조업사에 근무하며 했던 일들과 있었던 에피소드들이다.
밴쿠버 공항 지상직 업무
체크인 시작
온더잡 트레이닝 기간을 거친 후 혼자 카운터 하나를 맡아 체크인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일을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서비스가 가장 주요한 업무라고 생각했는데 체크인 업무의 근본은 위반 사항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체크인 시 해당 나라에 입국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승객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실수로 태워 보내면 그 승객은 도착 이후 입국 거절로 추방이 된다. 그 승객을 태워 보낸 해당 항공사는 패널티를 물고 크리딧이 깎이며 항공사와 계약 관계에 있는 우리와 같은 조업사는 항공사로부터 상당한 금액의 벌금을 청구 당한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체크인 시에 최종 목적지 별로 해당 승객의 입국 조건과 비자, 리턴 티켓 소지 여부 등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이 가장 주요한 업무였다. 조업사에서 일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승객 한 명 한 명도 고객이지만 항공사가 실질적인 고객이라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위반이 발생하면 승객에도 항공사에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이행하지 못한 셈이 된다. 매니저와 항공사 직원들도 매 항공편마다 모든 승객 리스트를 보며 체크인 상태를 더블 체크하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을 일 같지만 실제로 위반 사고는 종종 발생을 한다. 내가 일하는 동안에도 3번 정도를 봤다. 위반이 발생하면 본사에서 공문이 날라오고 다음 브리핑 때 숙청의 시간을 갖는다.
이것이 승객들과 실랑이를 벌이게 되는 큰 요인이기도 했다. 수화물 무게 초과 다음으로 가장 많은 언쟁이 생기는 때가 승객에게 비자나 리턴 티켓을 요청할 때이다. 생각보다 많은 승객이 본인이 그 나라를 가기 위해서 여행 비자가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다가 체크인을 하러 온 자리에서 안다. 이게 익숙해지다 보니 새삼 한국인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진 것이 한국 손님들은 묻기도 전에 비자며 리턴 티켓이며 출력까지 해와서 먼저 보여준다.
Blue RAIC의 설움
수습 기간이 끝나갈 무렵 나와 전체 트레이닝부터 같이 했고 같은 항공사에 배정 받았던 동기 한 명은 해고가 되었다. 업무 태도도 좋지 않고 앞서 말한 위반 사고도 치고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들었지만 그 친구에게 있어서는 디폴트 값인 캐나다 문화권에 영어가 모국어인 상태가 나에게 주어졌다면 정말이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어찌 되었든 비자가 일시적이고 영어가 부족하더라도 좋은 태도를 유지하고 업무를 잘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체감했다.
하지만 워홀 비자의 가장 큰 제약은 full RAIC(공항제한구역 출입증)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다른 동기들이 입사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full access가 가능한 red RAIC이 나온 반면 나는 퇴사할 때까지 blue RAIC을 가지고 일했다. Search required인 blue 패스는 게이트로 넘어갈 때마다 매번 자켓을 벗고 소지품을 검사하는 검색대를 거쳐야 했으며 공항 내 직원 전용 엘리베이터도 타지 못하고 항공사 오피스들이 있는 층으로 들어가는 출입문도 열지 못했다. 게이트가 잠겨있을 때는 게이트 문도 못 열고 카고 층에도 내려갈 수 없었다. 공항 내에서 골프카 운전도 금지되었다.
그래서 나는 일찍 출근을 해도 누군가 오기 전까지 항상 오피스 층 앞에서 기다렸다 들어가야 했고 도착편 시프트에 휠체어 손님을 케어할 때는 공항 직원을 아무나 붙잡고 엘리베이터 좀 잡아 달라고 부탁해야 하기도 했다. 오피셜은 아니지만 선배들에게 들은 말로는 입사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도록 red 패스가 나오지 않으면 해고된다는 썰도 있었다. 나는 red 패스가 있는 동료들한테 열심히 붙어 다녀야 했지만 뭐 가끔씩 귀찮긴 해도 크게 힘든 점은 없었다. 그러나 가장 아쉬웠던 것은 다른 모든 포지션은 경험해봤음에도 수화물 핸들링을 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 나에게는 체크인보다도 카고 쪽 포지션이 더 매력적이었고 공항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 대한 이해도도 좀 더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를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지금도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게이트 리더
혼자 체크인 카운터를 맡아서 일을 한 지 2주 정도 되어갈 때 쯤 게이트 트레이닝을 받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오랜만에 도착편 시프트를 하러 나간 날 냅다 항공기에 브릿지 도킹하는 법부터 알려주더니 곧바로 게이트 리더 트레이닝을 받게 됐다. 게이트 리더는 출국장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바로 환승하는 승객들, 즉 캐나다 내 다른 도시에서 국내선을 타고 와 밴쿠버에서 국제선으로 환승하는 승객들을 담당하는 것이 주 업무였는데 바깥 카운터와 똑같이 게이트 카운터에서 체크인을 하면 되었다. 문제는 정원이 300명인 비행 편이라고 치면 대략 100명은 이러한 인바운드 환승객이었는데 이를 짧으면 1시간 안에 혼자서 다 쳐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리더가 먼저 게이트로 들어가서 정신없이 일하고 있으면 30분 정도 남겨두고 그 날의 세컨 케이트가 와서 게이트 체크인을 같이 도와준다.
환승객이 많은 날에는 화장실도 못 가고 손이 날아갈 정도의 속도로 일해야 겨우 비행기 출발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환승객들이 시간의 여유를 두고 오는 것이 아니라 보통은 다시 체크인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라운지나 면세점에 있다가 출발 시간이 임박해서야 게이트 앞으로 오기 때문에 탑승 직전에 숨 넘어가도록 일해야 하는 포지션이었다. 이렇게 게이트에 혼자 있을 때 내가 처음 겪는 돌발 상황이 생기면 바깥 카운터에 있는 매니저한테 전화로 물어볼 수 밖에 없는데 바깥도 항상 정신 없이 바쁘기 때문에 스스로의 판단으로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이트 리더가 캐빈 크루 탑승 시간, 보딩 시작 시간, 마지막 승객 탑승 시간, 항공기 도어 클로즈 시간 등을 다 기록했어야 하는데 초반에는 이런 것들을 체크할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일이 좀 익숙해지고 나니 종종 환승객이 적은 날에는 가장 좋은 포지션이 되었다. 미리 게이트로 넘어가서 안에서 여유롭게 커피도 마시고 카고 담당 직원들의 업무도 엿 보고 미리 와서 탑승 대기하는 손님들이나 캐빈 크루들과 수다도 떨 수 있는 유일한 포지션이었기 때문. 나에게는 바깥 카운터에서 4시간을 노멀하게 일하느냐, 게이트에서 1시간을 초집중해서 일하느냐의 차이었다. 게이트 업무는 경험 많고 손이 빠른 사람 위주로 배정되었기 때문에 항상 같이 일하는 파트너들이 내가 좋아하고 배울 점 많은 선배들이어서 더 좋았다. 가끔씩 강력한 컴플레인을 받을 때 그것을 안에서 매니저들 없이 온전히 혼자 감당해내야 한다는 것만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