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홀 비자로 밴쿠버 공항 지상 조업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다. 입사 후 회사 차원에서 진행하는 일주일 간의 전체 트레이닝을 패스하고 나면 각각 일하게 될 항공사를 배정 받게 되고, 다시 각 항공사 별로 규정 및 시스템과 관련된 실무 트레이닝을 진행한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 트레이닝 기간 동안의 이야기.
밴쿠버 공항 지상직 트레이닝
지상 조업사 전체 트레이닝
합격 후 트레이닝 시작까지는 2주 정도의 텀이 있었다. 트레이닝을 시작할 때 쯤에는 겨울에 가까운 날씨가 되어 있었고 해도 뜨지 않은 깜깜한 새벽에 집을 나서야 했다. 트레이닝 건물은 공항 건물과는 트레인으로 한 정거장 떨어진 정비동 구역에 있었다. 정거장에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야 해서 당시 가지고 온 두꺼운 옷도 없었던 나는 매일 새벽마다 떨었던 기억이 난다. 조만간 패딩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한국의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마냥 빡빡한 스케줄이었다. 일주일 동안 아침 7시부터 저녁 5시까지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보고, 다시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보고의 무한 반복이었다. 각 시험마다 정해진 기준 점수를 넘겨야 통과를 할 수 있었다. 실질적인 업무에 관한 트레이닝이라기보다는 공항에서 일하면서 알아야 할 전반적인 그라운드에 관한 트레이닝이었다. 항공법과 역사를 비롯해 안전 규정과 같은 것들을 배웠다.
일주일 간의 트레이닝이 후반부로 흘러갈 때 쯤에는 스케줄 비딩하는 법을 배우고 유니폼을 수령하고 노동 조합에 등록을 했다. 마지막엔 현장 실습 느낌으로 실제로 선배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러 가기도 했다. 공항 내에서 알고 있어야 할 시설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락커룸의 팜인아웃 기계에 지문 등록도 했다.
마지막 날 파이널 테스트를 치른 뒤에는 각자 일하게 될 항공사 배정을 받았다. 일주일 동안 점심도 같이 먹고 뚜벅이었던 나를 배려해 돌아가면서 카풀을 해주던 친구들이었는데 이제 뿔뿔이 흩어진다니 살짝 아쉽기도 했다.
이 회사는 모든 것이 입사 순이었고 동시에 입사한 우리 안에서도 시니어리티를 정해야했기 때문에 뽑기를 했다. 나는 앞에서 3번째 정도였는데 나중에 이 순서 하나 차이가 정말 큰 역할을 한다. 어쨌거나 가장 막내인 우리에게 주어지는 근무 타임은 야간 또는 이른 새벽이 대부분이 대부분이었다. 3교대 스케줄인 LCC 항공사의 비정규 항공편만 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근무 타임이 고정인 항공사로 배정을 받게 되었다.
첫 한 달 동안 신입으로 한 일
전체 트레이닝이 끝난 당일에 바로 항공사 트레이닝을 시작한 친구들도 있었는데 내가 배정 받은 항공사에서는 별도의 연락이 없었다. HR 부서에서 정해준 첫 출근 날 공지 받은 체크인 카운터로 나갔더니 카운터는 텅텅 비어있었다. 출근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오질 않았고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서 무작정 공항 견학 때 알아두었던 회사 사무실로 갔다.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들이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새로 출근하게 된 에이전트라고 배정 받은 항공사를 말해주었더니 본인을 따라오라고 했다.
매니저를 따라 인적 하나 없는 미로 같은 길을 지나 항공사 사무실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방금까지의 고요했던 분위기와 정반대로 사무실의 모두가 정신없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 매니저가 잠깐 모두를 주목 시켜 내 소개를 해주었고 열 몇명이 넘는 사람들이 간단한 환영 인사와 함께 본인들의 이름을 빠르게 말해주었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듣는 동시에 바로 까먹어 버렸지만.
짧은 브리핑을 마친 후에 업무 카트를 끌고 다같이 체크인 카운터로 내려갔다. 첫 날의 업무는 웨이팅 라인을 지키고 서서 클래스 별 체크인 카운터로 승객을 안내해주면 되는 것이었다. 체크인이 얼추 끝나가면 보딩 게이트로 넘어가서 대기 중인 승객들 사이를 돌며 부피가 크거나 무거워 보이는 기내 수화물을 찾아내 위탁 수화물로 체크인하게끔 유도하는 일을 했다. 그러다 보딩 시간이 되면 휠체어 승객이나 유아 동반 승객 먼저 탑승 시킨 후 일반 승객들의 여권과 탑승권을 확인하고 보딩을 진행하면 되었다.
나는 정확히 한 달 동안 이 일을 반복했다. 체크인 에이전트 포지션으로 들어온 건데 도대체 체크인은 언제 시작할 수 있는 건지 트레이닝을 해주기는 하는 건지 의문스러웠다. 보딩 게이트 업무는 그나마 나았지만 웨이팅 라인을 지키고 서서 앵무새 같은 말만 몇 시간씩 반복하는 건 진짜 끔찍했다. 이 시간을 버티는 동안 어느 정도 친해지게 된 선배들은 나에게 아직 트레이닝을 시작할 신입의 인원이 모이지 않아서 기다리는 중인 것이라고 했다. 나와 내 입사 동기 한 명은 우리 항공사에 배정된 신입 인원 4-5명이 채워질 때까지 한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드디어 항공사 트레이닝
정확히 한 달을 채우고 나니 신입이 아니라 다른 항공사에서 2명을 차출하여 인원 충원을 했고 그렇게 4명이 되자 드디어 트레이닝 일정이 잡혔다. 항공사 트레이닝은 공항 내에 이런 공간도 있구나 싶었던 마치 대학교 강의실 같은 곳에서 하루 6시간씩 5일 동안 진행되었다.
항공사 자체 클래스 및 항공사가 소속된 스타얼라이언스 클래스 별 제공사항, 주요 취항지에 대한 국적별(여권별) 입국 조건과 필요 비자, 주요 운항 기종과 기종별 주의 사항, 수화물 규정과 업차지 등에 대해 배웠다. 대부분이 정확히 문서화 되어 있는 규정이어서 딱히 이해를 한다기보다는 빠르게 암기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사실 지금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분량도 어마어마했고 한국말로 해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내가 과연 이것을 다 영어로 패스하고 실전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 이후엔 체크인 시스템 사용법을 배웠다. 아마데우스 시스템을 사용하는 항공사였는데 몇몇 중국 항공사들은 프론트 디자인 자체가 없는 블랙 화면에 코드 집어넣어서 좌석을 짜는 것처럼 보이는 뭐 그런 끔찍한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기본적인 시스템 사용법에 더불어 전 세계 공통으로 사용하는 표기법과 약자들, 수화물 작업자들과 캐빈 크루들을 배려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사항들에 대해 배웠다.
회사 전체 트레이닝 때보다 훨씬 빡세게 공부했다. 그때는 점수가 미달 되는 사람이 있어도 재시험의 기회를 주고 어떻게든 다같이 통과할 수 있게 해주는 느낌이었다면 항공사 트레이닝에서 배우는 것들은 실제로 내가 정확히 숙지하고 있어야만 일을 할 수 있기도 했고 테스트에서 점수 미달이면 가차 없이 탈락이었다. 당시 밴쿠버 취항 항공사 중 모든 에이전트가 인정하는 가장 스트릭한 항공사로 손에 꼽혔기 때문에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트레이닝 마지막 날 테스트를 보았고 결과는 4명 모두 합격이었다. 트레이너가 해준 말 중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우리는 무례한 손님에게 친절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응당 그래야겠지만 그들이 그냥 bitch처럼 행동한다면 너네가 더 한 bitch가 되라고 했다. 한국 항공사였으면 과연 트레이닝에서 들을 수 있을 말이었을까 싶어서 재밌었다. 어쨌든 이렇게 아마데우스에 내 계정이 생성되었고 이제 체크인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