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워홀 – 타우랑가 카페 일자리

뉴질랜드 워홀 비자로 타우랑가에 1년 가까이 살면서 총 세 군데의 브런치 카페에서 일을 했다.
어떻게 카페 일자리를 구했는지부터 정확히 무슨 일을 했는지, 힘들었던 점과 그래도 추천하는 이유까지 외노자 신분의 카페 알바생으로서 뉴질랜드 북섬의 소도시인 타우랑가에서의 경험담을 푼다.

뉴질랜드 워홀 카페 알바

CV 드롭

이런 소도시에서 워홀 비자로 카페나 식당 일자리를 구하려면 그냥 직접 가서 CV 주면서 인사하고 오는 게 가장 빠르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한인 사이트에 올라오는 한인 잡들을 제외하고는 온라인에 캐셔나 서버 직종의 공고가 잘 올라오지도 않으며, 어디서 구인 중이라는 정보를 듣는 경우가 아니면 어디에 일자리가 있는지 미리 알기도 어렵다.

나의 경우도 그랬고 주변 친구들을 보더라도 그냥 하루 날을 잡고 구역을 정해서 걸어 다니며 눈에 보이는 가게마다 차례대로 들어가 CV를 뿌리고 나오는 게 가장 쉽고 빠르게 괜찮은 일자리를 구한 방법이었다.
초반에는 무작정 남의 업장에 쳐들어가 일자리가 있냐고 물어보는 느낌이라 매우 어색하고 용기도 필요했지만 이 나라에서는 이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인식하고 난 후 몇 번 반복하다보니 나중엔 활기차고 자신감 넘치는 인상까지 줄 수 있었다.

사장이나 최소 매니저 급의 얼굴을 보고 직접 CV를 줄 수 있으면 베스트지만 그냥 거기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한테 주더라도 웬만하면 전달은 해준다. 피크타임에 찾아가서 바빠죽겠는 사람을 붙들지만 않으면 된다.
현재 구인 중은 아니지만 나중에 자리가 생기면 연락 주겠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앞으로의 구인 계획도 전혀 없는 곳 같으면 CV 한 장이라도 아끼라고 다시 돌려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 자리에서 CV를 읽어보고 바로 트라이얼 일정을 잡은 곳도 있고 며칠 뒤 연락이 와서 트라이얼을 오라고 한 곳도 있다. 몇 달이 지나 거의 기억에서 잊혀질때쯤 정말로 자리가 생겼다고 연락이 온 곳도 있었다.

이 외에도 종종 지인을 통해서 어디서 구인 중이라는 정보를 듣거나 내가 일하던 가게의 손님한테서 나름의 스카웃 제의를 받은 적도 있고, 심지어 나랑 같이 일했던 동료 중 한 명은 사장님이 우연히 근처에서 만났는데 야무지게 이삿짐을 옮기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고(?) 데려온 케이스이기도 했다. 살다보면 어떻게든 기회는 찾아오는 듯 하다.

트라이얼

트라이얼은 실제로 몇 시간 정도 일을 시켜보며 평가하는 면접의 연장선 개념인데 트라이얼까지 했으면 태도불량이 아니고서야 웬만해서는 합격이 된다. 트라이얼까지 했는데 출근을 안 하는 거면 본인이 먼저 깐 상황이 더 많다. 특히나 본인이 아쉬울 것이 없는 키위애들. 대체로 트라이얼은 무보수인 경우가 많은데 대신 그 날의 점심식사 정도를 제공해준다.

트라이얼 데이에 실질적으로 일을 하기를 기대하지는 않기 때문에 열심히 알려주는 거 배우고 메모할 거 있으면 받아 적고 하다가 직접 한번 해볼래? 했을 때 못하더라도 적극적으로 해보려는 태도만 보이면 된다.
나는 평소에 차가워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이라 의식적으로 미소를 유지하려고 했고 손님들한테 인사도 열심히 하고 스몰토크도 많이 하려 노력했다.

트라이얼이 끝나고 마음에 들면 보통 그 자리에서 바로 언제부터 출근하라고 말을 해주는데 그럼 나는 캐비닛 푸드와 식사 메뉴판, 포스기 화면 같은 것들을 찍어가서 출근 전까지 메뉴와 같은 것들을 어느 정도 숙지하고 갔다.
보통의 가게들은 포스기의 메뉴만 누르면 가격이 자동 반영되지만 전체 메뉴와 음료 하나하나의 정확한 가격을 외워서 매번 금액으로 입력해야 하는 곳도 있었다.

카페에서 하는 일

여기는 대부분의 카페들이 오전 6-7시 정도에 문을 열고 늦어도 오후 3-4시에는 마감을 한다.
오픈조 일 땐 새벽 5시반에 출근을 할 때도 있었는데 설마 이 시간에 손님이 오겠어? 하는데 진짜로 그 시간에도 키위들은 매장에 앉아 커피와 아침을 먹는다. 대다수는 출근길의 take away 손님이기는 하지만.

어느 카페를 가나 다들 비슷한 메뉴에 비슷한 시스템이고 어느 정도의 올라운더 역할은 해야 한다.
주 업무는 주문/결제 받기, 캐비닛 푸드를 꺼내주거나 세팅해서 자리로 가져다주기, 간단한 티와 음료 제조, 여기에 추가로 바리스타라면 커피까지 만든다. 식사 메뉴는 주방에 넘기고 음식이 나오면 서빙만 하면 된다. 그 외에 잡다한 일들과 청소 등을 한다.

규모가 작은 베이커리 카페에서 풀타임으로 일했을 때는 주방 보조 일까지도 같이 했다.
나는 계란 후라이도 다 태워먹을 정도로 요리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여기서 일하면서 손님의 아침 식사를 만들고 온갖 것들을 튀기고 양파도 썰고 계란도 삶고 한가할 땐 닭가슴살도 찢었다. 좀 더 지나선 파이와 샌드위치를 만들고 더 지나선 케잌도 만들었으며 나중엔 하다하다 바리스타가 아닌데 커피까지 만들었다.
재고 파악과 발주까지 그냥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다 하게 될 수도 있다.

어려웠던 점

이 나라 사람들은 커피의 맛에 민감하고 그만큼 커피의 커스터마이징이 보편화되어 있는데 우유와 설탕 종류만 해도 여러 개이고 그 외의 요구 사항도 다양해서 주문에 옵션이 안 붙는 경우가 드물다.

Large cappuccino with trim milk, choc on top, half strength, extra hot …
Small flat white with almond milk, 2 sugar, quarter strength, no froth …


예를 들면 커피 하나하나에 이런 식으로 옵션이 붙는데 초반에 가장 어려웠던 건 단골 손님 한명한명의 커피를 사이즈와 옵션까지 다 외우는 것이었다.
내가 트레이니라는 걸 알아도 “my coffee please”, “my usual please” 식으로만 말하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었고 그게 무슨 커피인지 되물으면 원래 일하던 직원한테 자기 이름을 말하면 알 것이라고 했다.

초반에는 손님들 얼굴도 다 비슷비슷해보이고 커피와 옵션까지는 외운다쳐도 무슨 사이즈로 먹는지까지 외우는 것이 죽을 맛이었는데 지나고 보면 이런 것들은 일주일 정도만 일해도 금방 익숙해진다. 그냥 손님의 이름을 외워서 주문서에 OO’s coffee라고만 써놓기도 했다.

그리고 또 힘들었던 건 뭐 당연히 영어다. 현지 카페에서 일을 하더라도 생각보다 영어를 다양하게 쓸 일이 많지는 않다. 평소에 쓰는 말만 계속 하면서도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
그래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나 손님들이랑 최대한 대화를 많이 하려고 했다. 그런데 진짜 가끔씩 컨디션이 안 좋거나 하면 영어가 너무 안들려서 짜증이 날 때가 있었다.

내가 말을 못하는 건 둘째치고 손님이 원하는 걸 제대로 못 알아들어서 실수하거나 다시 되묻는 내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머나먼 타지에 와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건 서럽긴 해도 내 사정이고, 손님 입장에서는 돈 내고 서비스를 제공받는 입장에서 직원이 말귀도 못 알아먹는 꼴이니 온전히 내 잘못이 맞다. 그냥 이 악물고 열심히 공부하는 수 밖에 없었고 이런저런 상황도 겪고 여러 경험들도 하다보니 귀도 입도 조금씩 트였다.

*지금도 기억나는 실수 한 가지
sweetener를 흔히들 equal이라고도 하는데 한 손님이 flat white를 주문한 다음에 two equal이라고 덧붙여서 스위트너를 두 개 넣은 플랫화이트가 나간적이 있다.
알고보니 플랫화이트를 두 잔 시킨거였다. two equal = 같은 거 두잔! 휴

기억에 남는 손님들

1년 가까이 일하는 동안 계산 안하고 도망가는 손님, 물건 훔쳐가는 손님, 아시안이라고 표정부터 썩는 손님, 일부러 잔을 깬 손님, 매일같이 와서 구걸하는 홈리스 손님(?)도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동네에서 마주치면 항상 반갑게 인사해주던 손님, 내 한국 이름을 알려 달라고 해서 꼬박꼬박 한국 이름으로 불러주던 손님, 나 대신 사장님 욕해주던 손님, 그리고 자신들의 기쁜 소식과 슬픈 소식까지 일상을 공유해주던 손님들이 있어서 이 시절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뉴질랜드 그 중에서도 타우랑가에서의 시간을 돌아보자면 사실 워홀로 많이들 가는 다른 나라나 도시에 비해 일자리가 한정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와 동시에 내 인생 통틀어 처음으로 큰 걱정 근심 없이 일과 자연을 동시에 즐기며 한 텀 쉬어갔던 힐링 라이프였다. 특히나 타우랑가는 바다 도시라 썸머타임이 시작되면 일 끝나고 난 저녁에도 바다에 둥둥 떠 있을 수 있었다!

1년 동안 북섬 남섬 통틀어 안 가본 곳이 손에 꼽을 정도로 시간 날 때마다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타우랑가가 살기에는 제일 좋은 도시였을거라 생각한다. 또한 이렇게 적당한 소도시에서의 무난한 난이도의 카페 알바는 해외살이 초기의 생활력과 영어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
여기에서만 경험해볼 수 있는 시즈널잡(키위, 베리, 홍합 등)도 있으며 워홀 비자로 그것도 뉴질랜드까지 왔으면 굳이 대도시에 정착하지 마시라는 개인적인 의견.
아! 다시 이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 타우랑가에서 집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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